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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Unwrapping the Mystery Inside the Eni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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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S. State Department’s bulletin of May 21st was unambiguous. It strongly recommended against travel by Americans to North Korea. This warning was based on several recent and worrisome incidents; the arrests of two U.S. citizens, one apparently after asking for asylum, the second for allegedly leaving a bible in his hotel room. These incidences happened as another American was serving a sentence in a North Korean labor camp. He still is.

5월 21일에 발표된 미국정부의 공고는 명백했으며 북한으로 여행을 가는 미국인들에게 강력히 권고되었다. 이 경고는 몇몇 최근의 염려스러운 사고에 따른 것이었다. 두 명의 미국시민이 체포되었는데, 한 명은 수용소에 대해 질문했기 때문이었으며, 전해진 바에 의하면 나머지 한 명은  호텔 방에 성경을 두고 가서였다고 한다. 두 번째 미국인은 북한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의 노역을 선고 받았으며 여전히 그 곳에 있다.

 

It is not easy to sit on the fence when it comes to North Korea, also known as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Its leaders have been characterized as ruthless, its policies and actions interpreted as reckless.  It’s universally seen as an international pariah--a rogue state like no other. In his January 2002 State of the Union Address, President George W. Bush, famously labeled North Korea (along with Iran and Iraq) as one of three countries comprising the “Axis of Evil.”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으로도 알려진 북한에 관한 것들은 그저 관망하고만 있을 수 없다. 그 나라의 지도자들은 무자비한 면을 보여왔고, 북한의 정책과 행동은 무모하게 해석되어 왔다. 어디에서나 국제적인 왕따가 되었으며, 독보적인 깡패같다  2002년 11월, 미합중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유명하게 (이란과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을 형성하는 세 나라 중 하나로 낙인 찍었다.

Visiting North Korea had long been on my bucket list. I felt that I needed to experience this secretive and vexing place for myself. Once I discovered that U.S. citizens could, in fact, legally visit North Korea by going through China, I signed myself up.  Our tour originated in Beijing, only a two-hour flight from my residence in Daegu where I teach English at a local university. Koryo Tours, a British outfit, scheduled a mandatory briefing session, in their Beijing office, the day before we departed on our 8-day tour of North Korea. We listened intently to their recommended “Do’s,” and mostly, “Don’ts.” Don’t stray from the group at any time. No photos of soldiers or military installations. Don’t ask our North Korean tour guides challenging political questions that might be interpreted as insults to the leadership there. Suddenly, this adventure was becoming uncomfortably real.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오랫동안 필자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필자는 이 비밀스럽고 성가신 나라를 경험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사실 미국 시민권자가 중국을 통해서 북한을 법적으로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방문을 신청했다. 여행은 필자가 지역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대구에서 겨우 2시간 떨어진 베이징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회사인 고려 여행사는 8일 간의 북한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 날에 베이징 지점에서 필수적인 브리핑을 듣도록 스케줄을 짰다. 우리는 그들이 권고하는 “할 것”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열심히 들었다. 어떤 때라도 그룹을 벗어나지 마라. 군인이나 군사시설의 사진은 찍지 마라. 우리를 담당하는 북한 가이드에게 북한의 지도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도전적인 정치적 질문은 하지 마라. 갑자기 이 모험이 거북하게 진짜가 되고 있었다.

Our Russian-built plane landed in Pyongyang, North Korea’s capital of 3.5 million, clearly the showcase of the country. The many photos of Pyongyang I had seen suggested a dark gray metropolis, devoid of color, with wide empty streets, its citizens, drab and humorless. Pyongyang, also known as the City of Monuments with its seemingly endless parade of statues, museums and edifices that honor the State, does lack both the vibrancy and excitement of its South Korean counterpart, Seoul. But it’s a city that somehow seems to make due in spite of endless obstacles, including an inferior infrastructure, and regular power outages. When the lights go out, no one misses a beat. Its subway, bus and trolley systems make impressive use of antiquated vehicles from the 70’s, 80’s, even the 60’s—many imported from former Eastern bloc countries.

우리가 탄 러시아산 비행기가 명백히 전시용이자 350만명이 거주하는 북한의 수도 평양에 착륙했다. 필자가 봐온 수많은 평양의 사진은 텅 빈 넓은 거리, 평양의 시민들, 단조로움, 유머가 없는 풍경을 담은, 색이라곤 전혀 없는 어둡고 회색의 거대도시였다. 북한을 기리는 동상, 박물관, 대건축물이 끝없이 줄지어 있는 기념비의 도시로도 알려진 평양은 상대국인 남한의 서울이 갖고 있는 생동감과 신명 모두 부족하다. 하지만 열악한 기반시설을 포함한 수많은 장애물과 정기적인 정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유지가 되는 듯 하다. 불이 나갈 때면 아무도 주저하지 않은다. 지하철,  버스,  전차 시스템은 70년대, 80년대 심지어 60년대의 구식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인상적이었으며,  다수가 동유럽의 구 공산국가들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다.

Our tour covered a wide swath of the southern half of the country and included a visit to Panmunjeom, along the DMZ, and the nearby historic city of Kaesong, where 120 South Korean-built and managed factories provide employment to over 53,000 North Korean workers.  Having previously visited the DMZ from the South Korean side, I was surprised by how low key and non-bellicose the North Korean soldiers were. In fact, I struck up a conversation with an officer who led our tour there. He was cordial and posed for photos with a number of us on the tour. Such informality never happens with their more serious South Korean army counterparts.

우리의 여행은 북한의 남쪽 절반에 해당하는 넓은 지역을 보여주었으며, 역사적인 도시 개성 근처에 있는 DMZ 내 판문점 방문도 포함했다. 개성은 남한이 건설하고 관리하는 120개의 공장이 5만 3천명이 넘는 북한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곳이다. 이전에 남한에서 DMZ를 방문했는데 북한군인들이 저자세이며 호전적이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사실 그 곳에서 우리의 투어를 진행한 한 장교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친절했고, 투어에 참가한 우리 중 다수와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다. 반대쪽에 있는 더 진지한 분위기의 남한군인과는 절대 그런 비격식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I was impressed by the general friendliness of the North Koreans we encountered everywhere we visited. They are very much like the South Koreans I have come to know and respect for their earnestness, generosity and diligence. North Koreans seem to genuinely love their country and they are a very proud lot.  However, that should not come as a surprise.

우리 방문하는 곳마다 접하게 되는 북한사람들의 보편적인 환대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필자가 알게 된 남한 사람들과 필자가 경의를 표하는 그들의 성실함, 관대함, 근면함도 많이 닮았다. 북한 사람들은 순수하게 그들의 나라를 사랑하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The control of information by the state is complete and unrelenting, and has been since Kim Il Sung came to power in 1945.  Authoritarian leadership, handed down through 3 consecutive generations of the Kim dynasty, now resides with 30-year old Kim Jung Un. North Korean newspapers, TV broadcasts, schools, billboards, banners, even public loud speakers, extol praise for the country while spewing forth propaganda against the enemy, usually in the personage of the venomous Americans.

정부의 정보 통제는 완벽했고 가차없었으며, 1945년 김일성이 권력을 잡은 이래로 계속 되어왔다. 김왕조 내에서 3대째 세습되어 온 권의주의적인 통치권은 이제 30살의 김정은에게 있다. 북한 신문, TV 방송, 학교, 게시판, 현수막, 심지어 공공장소의 스피커까지 적, 보통 악독한 미국인 저명인사에 대한 선동을 토해내는 반면, 나라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The “elephant in the room” is the network of prison camps long revealed by satellite imagery and confirmed by the few individuals fortunate enough to have made it out alive. Most recently, Shin Dong-hyuk, author of “Escape from Camp 14,” described the almost unimaginable brutality of the camps. It’s in these camps where 3 generations of family members are banished for crimes committed against the state. All North Koreans belong to neighborhood watchdog groups, comprised of 25-50 families.  Known as inminban, they are led by hardened middle-aged women who keep tabs on everyone and everything, cementing the foundation of the enterprise of fear run by Kim Jung Un and his minions. Everyone on the tour is aware of these camps. But, we avoid the topic for fear that just talking about them would put our guides at serious personal risk.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쉽사리 꺼내지 못 하는 이슈 하나는 오랫동안 위성사진으로 실체가 드러났고, 살아서 탈출할 수 있어 매우 운이 좋았던 몇몇 사람들에 의해 확인된 수용소의 네트워크이다. 가장 최근에는 “14호 수용소 탈출”의 저자 신동혁씨가 거의 상상이 불가능한 수용소의 무자비함을 묘사했다. 모든 북한사람들은 대략 25~50가구로 이뤄진 이웃을 감시하는 그룹에 속해 있다. ‘인민반’으로 알려진 이 조직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을 예의 주시하는 완고한 중년 여성들이 이끈다. 그리고 그들은 김정은과 그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공포국가의 토대를 굳건하게 해준다. 투어에 참가한 모두가 이러한 수용소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가이드를 심각한 개인적인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그 주제를 피했다.

Our tour stops included a fertilizer manufacturing plant in Hamhung, an agricultural university in Wonsan, both cities along the east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and a historic residence of a former king. At each site, we are greeted by a lovely hostess wearing the traditional and colorful Korean clothing called a hanbok. The story they tell us is always the same. We’re made aware when either Kim Il Sung, Kim Jung Il or Kim Jung Un visited the site and the amazing “wisdom” or expertise they imparted while there. Pictures of the visit are shown and the chair, pen or desk that they used, invariably have become sacred artifacts.

우리의 목적지는 한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있는 함흥에 있는 비료 생산 공장, 원산의 농업 대학, 옛 왕이 살던 역사적인 거주 공간에도 갔다. 함흥과 원산 모두 한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위치해 있다. 각 장소에서 색색의 전통 한복을 입은 사랑스러운 여접객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접객원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항상 똑같았다. 언제 김일성이든 김정일, 김정은이 그 장소를 방문했는지, 그들이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전파한 놀라운 "지혜"나 기술에 대해 알게끔 했다. 방문사진도 보여주고,  그들이 사용했던 의자, 볼펜, 책상은 예외없이 신성한 유물이 되었다.

Every North Korean wears a pin picturing one or both of the former leaders on a red background. Just as predictably, their framed photos are carefully placed visibly high on a wall in every family’s residence. Patriotism, devotion and obedience, at least publicly, appear to run wide and deep. They fill the spaces between everything, like mortar, securing the bricks of the State.

모든 북한 사람들은 붉은 바탕에 옛 지도자들의 그림이 하나 또는 둘이 있는 뱃지를 달고 있다. 예상하는 바대로 액자에 넣은 그들의 사진은 조심스럽게 모든 사람들의 집의 벽 높이 걸려 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애국심, 헌신, 복종이 깊고 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이 마치 회반죽처럼 모든 것의 빈틈을 메워준다. 북한을 구성하는 벽돌을 단단하게 유지하도록 말이다.

Where does genuine loyalty begin and end? In what places does fear reside? It’s nearly impossible to discern in this country of cartoon-like images and monuments on steroids. During a radio address in 1939, Winston Churchill uttered these now memorable words. Russia, he said, “is a riddle wrapped in a mystery inside an enigma.” North Korea, its people, and its exploits, to this day, remain more of a mystery than Russia perhaps ever was.

이러한 진실한 충성심을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 것일까? 어떤 곳에서 두려움은 자리잡고 있는가? 만화 같은 이미지와 기념물보다 더 심한 이 나라에서 알아차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939년 라디오 연설에서, 윈스턴 처칠은 후에 유명해진 이 말을 했다. “러시아는

수수께끼 속에서도 미스터리로 포장된 수수께끼이다.” 오늘날까지의 북한, 북한 사람들 그리고 북한의 업적은 러시아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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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en Schuit, on the faculty of Yeungnam University’s Foreign Language Institute, recently visited North Korea. He previously served as a U.S. Peace Corps volunteer in Korea. He is the author of “The Grapes of No Gun Ri,” an article about the massacre that took place in that South Korean village during the Korean War. He blogs about his experience living and working in South Korean at http://koreanbookends.blogspot.com/

영남대학교 외국어 교육원 소속인 스티븐 슈이트는 최근 북한을 방문했다. 이전에 한국에서 미국평화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한국의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에 대해 적은 “노군리의 포도”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http://koreanbookends.blogspot.com/에 한국에서의 삶과 일에 대해 경험한 것을 블로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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